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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

광화문 연가

by 감성노트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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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1988년에 발표된 이영훈 작사/작곡에 이문세가 노래한 '광화문 연가'의 가사 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낡은 필름속의 영화처럼 펼쳐지는 1970년대 장면들이 저에게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한 그리움이 노랫말처럼 세월따라 떠나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아마도 노래를 만들고 부른 두 사람과 같은 시절에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였기에 더욱 공감의 정서를 느끼는가 봅니다.

언제 한 번 그 길을 다시 느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중 지난 주 서울 나들이 동안 마침내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침 10시에 숙소를 나와 선배와의 점심약속 시간인 12시 30분까지 비어있는 2시간반을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즉석에서 기획하고 실행한 '광화문 연가 투어'. 그 기록을 낱낱이 공개하려 합니다.

 


 

장마중 이었지만 다행히 비는 안오고 흐리기만 한 날, 영등포에서 출발한 저는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서대문역에서 하차 하였습니다.

투어 코스는 지도에 표시 하였고, 다시 서대문역으로 회귀하는 코스로 걸었습니다.

 

광화문 연가 투어 맵

 

서대문역 5번 출구를 나와 걷기 시작하는데 언듯 '어, 이게 뭐지?'하는 느낌으로 돌아보니 인도 옆으로 작은 농지(?)가 조성되어 있더군요.

부추, 땅콩, 토란 등의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는데 여기가 옆에 있는 농업박물관의 야외전시장 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농업박물관이라니...

시간여유가 있었다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로 패스 했습니다.

 

 

광화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경향신문 건물이 보입니다. 그 시절엔 MBC 방송국 건물이었죠.

 

옥상의 안테나 타워가 방송국의 흔적으로 남아 있은 듯 싶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MBC TV를 틀면 나오던 명랑운동회 변웅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경향신문사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 정동길로 접어듭니다.

 

 

평일 오전의 정동길은 고즈넉한 한가함으로 맞아줍니다. 붉은 벽돌이 많이 보이는 길이 단정함, 온화함, 품격있음 등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동길로 접어든지 5분여, 1886년에 설립된 이화여고가 아직 그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의 학교들이 개발을 위해 강남으로 강제이주(?)당하는 와중에 살아남은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의 모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에게 이화여고의 기억은 여고에 들어간 남고생의 쑥스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매해 가을 10월초에 밴드반에서 음악회를 개최하였는데 9월 중순쯤 되면 음악회 팜플렛의 배포를 위해 밴드반원들이 서울 시내의 고등학교를 방문 하였습니다.

1학년과 2학년 한 명씩으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미리 나누어 놓은 지역들 중에서 추첨으로 방문지를 정하였는데, 제가 1학년 때 최고의 인기지역인 종로와 중구를 뽑아서 2학년 선배와 함께 주변의 학교들을 돌면서 이화여고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방문이란 것이 뭐 대단한 게 아니고 그저 각 학교의 음악 선생님을 만나뵙고 팜플렛을 전달하며 게시판 부착과 홍보를 부탁드리고 나오는 단순한 일 이었지만 여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담장 안쪽의 교정에서 여간해선 볼 수 없는 교복입은 남학생이 발견된 큰 사건 이었겠지요.

교실 창문으로 빼곡히 내밀은 양갈래 땋은머리 소녀들의 환호는 오히려 순진한 남학생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벌개진 얼굴로 서둘러 용무를 마치고 빠져나왔는데 무슨 적진에서 힘들게 탈출한 것 같이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소심했던 소년의 기억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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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의 담장을 따라 정동길은 이어집니다.

 

 

담장 끝에서 단정하고 소박한 서구풍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화여고보다 한 해 빠른 1885년에 설립된 정동제일교회 입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playskyb/222272957148

 

노래의 가사처럼 조그맣지는 않지만 대형교회의 위압감 있는 건물은 아니어서 아직 조그만 교회당의 느낌이 남아 있는듯 합니다. 그림과 같이 말이지요.

 

 

교회를 끼고 돌아 서소문쪽으로 얕은 언덕길로 접어들자마자 예상치 못했던 표석을 발견했습니다.

 

 

공산주의 원조국가인 러시아의 대사관과 자본주의 대표선수인 제이피모건, 이 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표지석이 이리 가까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니...

아이러니한 세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쯤에서 뒤로 돌아서니 언덕밑 정동길에 교회당이 보이는 위치가 됩니다.

 

 

언덕길을 내려와 다시 정동길을 이어서 걷습니다.

모퉁이에 서울시립미술관 표지석을 끼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이제부터 덕수궁 돌담길 입니다.

 

 

연인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길 이지만...

 

 

이 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속설때문에 주저하기도 하지요.

 

 

속설의 유래는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 있던 가정법원 때문 이었다고 합니다.

 

 

이혼절차를 밟기위해 부부가 함께 이 길을 걸어야 했을 테니까요.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이 돌담길의 끝을 마무리 합니다.

덕수궁 내의 석조전에서 매년 개최되던 국전 관람을 위해 학생들이 줄서서 들어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간고사후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람 가듯이 말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땐 이곳에서 여학생들과 미팅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영화 클래식 포스터

 

대략 이랬던 것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그 여학생들도 이제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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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니 바쁘게 돌아가는 시청앞 풍경이...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합니다.

 

 

덕수궁 담장을 따라 광화문쪽으로 걷습니다.

 

 

연극의 메카라 불리던 세실극장이 폐관의 위기에서 '국립정동극장 세실'로 기사회생하여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연극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터라... 아마도 한두번 와보긴 했을 겁니다.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이후 1991년까지 시민회관 별관으로 사용되었던 서울시의회 건물을 지나니,

 

 

태평로에서 세종로로 뻗어간 광폭의 남북 직선도로를 동서로 가로질러 종로와 신문로를 이어주는 광화문 네거리에 다가서게 됩니다.

 

 

네거리 조금 못미친 한켠에 서울과 전국의 거리측정의 기준점인 도로원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1997년에 이곳으로 이전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태평로에서 신문로쪽으로 좌회전하는 모퉁이 국제극장이 있던 자리는 고층의 오피스 빌딩이 들어서 있습니다.

1957년에 개봉관으로 세워진 국제극장은 1985년 폐관후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80년대초 국제극장, 출처 :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70년대 중반 이소룡 영화가 초대박 인기를 끌 때 이곳에서 그의 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항간에 이소룡 영화의 상영관 주변에서 싸움이 잘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10대 소년들이 마치 자기도 이소룡 같이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 이랍니다.

 

 

신문로에 들어서서 교보빌딩 옆으로 뻗어진 종로를 바라봅니다.

학원가였던 광화문과 종로엔 항상 학생들로 가득찼고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분식센터가 몰려 있었습니다.

학생들 만남의 장소가 전통적인 빵집에서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분식센터로 전환되는 시기여서 좀 나간다는 아이들은 다 이곳으로 몰려들었지요.

 

1960년대말 완공된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 출처 https://opengov.seoul.go.kr/photoarchives/7449159

 

지하철이 생기기 전 광화문 네거리엔 지하도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지하도는 항상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가장먼저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는 장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문로를 따라 올라가려니 건너편에 몇 해전 웅장하게 새로지어진 새문안교회가 보이고,

 

 

앞으로는 망치질하는 조형물이 시선을 끕니다.

 

 

전차가 전시된 곳에서 길을 건너면,

 

 

2002년에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 나옵니다.

 

 

내부에 시원하고 조용하고 한가한 카페가 있습니다.

 

 

이제 한 시간 정도를 걸었으니 쉬기에 좋은 장소 입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천천히 마셨습니다.

 

 

창밖으로 경희궁 가는 길이 보입니다.

 

 

경희궁을 향하는 넓직한 회랑엔 테이블과 의자가 있습니다.

비오는 날 밖을 내다보며 멍때리기고 앉아 있기에 딱 알맞는 곳 입니다.

 

 

고교평준화 이전 전국 No.2 로 인정되던 서울고등학교를 1980년에 강남으로 이전하고 복원한 경희궁. 서울의 다른 궁궐들에 비하여 매우 소박하다고 해야하나? 완전히 복원되 것 같지도 않고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궁을 지나쳐 신문로 방향으로 돌아 나옵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나서니

 

 

오른편으로 뜬금없이 70년대 감성의 골목길이 보입니다.

 

 

저는 약속시간 때문에 마을투어는 패스하고

 

 

마을입구로 거슬러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건너편으로 걷기 출발점인 농업박물관이 보이는 서대문역으로 돌아왔습니다.

​​

지금까지 길따라 천천히 걸으니 휴식시간 포함 2시간 소요되었습니다.

농업박물관, 정동제일교회,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돈의문박물관마을 등등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들여다 본다면 온전히 하루를 투입하여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광화문 연가 투어의 기록 이었습니다.

 

2024.07.11 에 다른 곳에 작성하였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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