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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즐거움

학생으로 살기

by 감성노트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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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위의 작은 누나마저 학교에 들어가고나니 아침을 먹고난 오전시간이 갑자기 조용하게 다가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다 들릴 정도의 조용함 이었습니다.

 

물론 간간이 어머니의 설거지소리 청소나 빨래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학교에 가고 혼자 집에 남은 아이는 극심하게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무리에서 따돌려진 외톨이의 느낌 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 이기도 하였습니다.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라댔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일요일에 낮잠을 주무시는 안방에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들어갔을 때 겨우 뵐 수 있었으므로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릴 계제는 아니었지요.

 

어머니는 나에게 여덟살이 되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며 그대신 누나들을 다그쳐 일종의 가내제작 학습지 같은 것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감히 어머니에게 저항하지 못했기에 누나들은 군소리 못하고 막내동생에게 일일 공부거리를 제공해야했습니다. 

 

ㅈㄴ교육이나 ㅃㄱ펜 등의 무슨 학습지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어머니에겐 귀찮음에서 벗어나며 교육효과도 거두는 일석이조의 솔루션이었겠지요.

이렇게 시작된 선행학습으로 한글 읽기와 쓰기 그리고 두자리수 까지의 덧셈과 뺄셈을 익혔고 심지어 천자문도 몇 페이지를 공부한 나는 마치 입산수도를 마치고 하산할 때를 기다리는 무림고수가 된 기분 이었습니다.

드디어 1965년 국민학교에 입학 함으로 6+3+3+4=16년간의 공식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식구들과 동네어른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잘한다 잘한다'는 소리를 꽤 많이 들어온데다 내가 생각해도 길에서 흔히 보이는 코찔찔이 또래들 보다 내자신이 훨신 세련되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코도 안흘렸거든요.

 



그러나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앞 글에서 말햇듯이 내가 들어간 학교가 당시 서울의 특A급 7개교 중에서도 선두권에 있는 학교였기에 나정도의 실력은 고수에 속하지도 못했으며, 유치원에서 1년을 배우고 온 초절정 고수로 보이는 아이도 여럿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번의 시험을 거친 후에 처음 받은 통지표에는 과목별 수,우,미,양,가 5단계 평가와 반별 석차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략 가늠하고 있던 바와 같이 중상 정도의 범위 였는데 그 후에도 전학하기 전까지 대체로 그 정도 성적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뜬금없이 좋은 성적이 나온 때도 있었고 머리를 쥐어 뜯을 정도로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은 적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머니는 조금 실망하신듯 하였지만 나에겐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에 띄는 좋은 성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은 그 기대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공부 못하는 애'로 분류되어 무시를 당하기도 싫었으니 딱 그 정도가 소심한 내가 마음 편히 지내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학생' 생활을 대부분의 다른 이들과 같이 아동에서 사춘기소년을 거쳐 청년이 될 때까지 16년 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젊음의 시간을 학생이라는 틀과 학교라는 조직 속에서 송두리째 보내게 되는 문명사회의 체계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도 말입니다.

잠시 질풍노도와 같이 내달리기도 하고 한 때 인생과 우주전반에 걸쳐 고민도 하였지만 대체로 대과 없이 무난하게 학생시절을 보냈으며, 그 시간들이 바탕이 되어 평범하게 사는 법도 터득하고 가정도 꾸려나가면서 소시민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한편으로 성공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더이상 학생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직장 생활 몇년 만에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지금 처럼만 공부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며, 학교에서 배운 것은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이 었음을 수시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과목으로도 편성되지 않은 '인생을 사는 지혜'는 태평양 보다도 넓은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길을 찾아 가듯이 무궁무진하게 주변에 널려져 있는 학습자료를 나홀로 선택하고 익혀가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역시 공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동안 쉬임 없이 배우고 익힘을 즐거이 하는 것이 정답인가 봅니다.

학교를 졸업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학생인 것을....

 

인생을 졸업하여 學生府君이 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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