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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즐거움

아동 : 혜화국민학교

by 감성노트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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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이 되면서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유치원은 부자집 아이들이나 다니는 것이고 우리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일곱살이 되었을 때 유치원에 보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세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 아무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 이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이제 형과 누나가 학교에 가면 조용한 집에 혼자 남아 뒹굴며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하던 나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집이 성북동에 있기에 형과 누나들은 모두 성북국민학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혜화국민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입학식에 코딱을 손수건을 다는게 필수

 

막내 아들을 굳이 학군을 위반해 가며 옆동네의 학교에 보낸 것은 집에서의 거리가 더 가깝다는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혜화국민학교가 서울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중학교 진학의 명문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소심했던 나는 입학 부터가 규정 위반임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매일매일이 불안 하였습니다.

 

주변에 나와 같이 타 지역에서 온 아이가 여럿 있었으나 그 아이들은 태평해 보였습니다.

 

유독 정해진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음의 평안이 깨지며 불편해하는 나의 성격탓에 어머니에게 여러번 전학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여덟살의 내가 어머니의 굳건한 의지를 꺽는다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요.

더구나 신설동에 사는 이모집의 나와 동갑내기 이종사촌이 버스와 전차를 갈아타며 다니겠다고 혜화국민학교에 입학했으니 나로서는 더이상 떼를 쓸 명분이 없었습니다. 

학년이 바뀌어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하거나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실시될 때는 우리집 주소가 공식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특히 스트레스가 심해졌습니다.

 

마치 표 안사고 극장에 숨어 들어온 아이처럼 언제 쫒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차라리 빨리 쫒겨가서 남은 학년이라도 편하게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번 하였는데 학교에서는 이따금씩 지적하기만 할 뿐 무슨 이유인지 결정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대상이 너무 많았기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오직 상급학교 진학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어떻게든 명문중학교 진학율이 높은 곳으로 아이를 보내려 하는게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몇몇 학교로 아이들이 몰리어 학교에서 감당하기 힘든 정도로 학생수가 증가 되어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바로 그 때 였습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오후반 아이들

 

한 반의 학생수가 백명을 넘나드니 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다 알지 못하고 지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학년당 스무 반이 넘게 있어 학년이 바뀌어 섞이면 같은 반에 아는 아이가 대여섯 밖에 안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해를 같이 다녀도 서로 같은 학교를 다니는지 알기 힘들었지요.  

만명이 넘는 전교생이 손바닥 만한 운동장에서 모두 모여 조회를 할 수도 없었으며, 교실이 모자라 저학년은 3부제 수업을 해야했고, 그래서 오전반 오후반에 더해 저녁반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혜화국민학교를 비롯하여 교동, 재동, 효제, 수송 등 소위 특A급  7개 국민학교는 부모님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5학년 가을에 집이 합정동으로 이사하여 전학할 때까지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혜화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전했다 돌아온 혜화국민학교. 고맙게 아직 그자리에 있음

 



그런데 5학년이 되는 해인 1969년부터 서울의 중학교 입학이 무시험 추첨제로 바뀌어서 모든 중학교가 평준화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콩나물시루로 비유되던 과밀학급에서 삐대며 보낸 시간은 중학교 선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게 된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전교생이 모두 알고 지내는 작은 시골학교에서 '아이러브스쿨'의 분위기를 한 껏 느껴가며 같이 자란 친구들이 하는 동창모임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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