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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즐거움

아동 : 손더스 중사

by 감성노트 202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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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골목끝 막다른 곳에 대문을 둔 집이 둘 있었습니다.

 

막다른 정면엔 꽤 큰 철제 대문을 가진 커다란 집이 있고 그 왼쪽 옆으로 측면에 자그마한 나무 대문을 가진 소박한 크기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나보다 두살 아래의 명호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살았습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엄마는 안계셨고 아빠는 군인이라 지방으로 전전하였기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어서 우리는 그 집을 '명호네' 혹은 '명호할머니네'로 불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골목에서 가장 친하게 왕래하며 지내는 집이기도 하고 나나 명호나 골목에 또래의 사내아이가 없어서 두살이라는 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쪽집에서 같이 놀기를 권장하여 서로 심심치 않게 왕래하던 집이었습니다.

 



그 명호네 집에서 티비를 들여 놓은 것이 내가 2학년쯤 이었으니 1966년 이었을 것입니다.

 

골목에 다른 몇몇 집에도 이미 티비가 있었으나 우리가 구경갈 정도로 편한 집들이 아니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마치 우리집에 티비가 들어온 듯한 기대감에 들떴던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거의 매일 저녁 밥숟갈을 놓자마자 명호네 집으로 달려가는게 일과였습니다.

 

명호할머니도 매번 반겨주셨기에 소심한 나도 부담 없이 그 집에 드나들며 밤 9시~10시까지도 눌러 앉아 티비를 볼 수 있었구요.

 

 

주로 미국 드라마를 더빙하여 방영하던 당시에 '도망자' 와 '0011 나폴레옹솔로' 등 재미 있는 프로가 여렀 있었는데, 단연 최고는 '전투' 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지만 최소한 남자 아이들에게서의 인기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전투'는 2차대전중 유럽 전장에서 분대 단위의 미군이 독일군을 무찌르는 소규모 전투를 주제로 한 드라마 입니다.

 

주인공은 분대장인 손더스 중사 였는데 그는 인간적이며, 합리적이고, 용감하면서 정도 많고, 임무는 항상 성공하면서도 겸손한 인물 입니다.

위험에는 앞장서고 필요할 때는 단호하니 부하들은 이견 없이 그의 말에 따릅니다.

 

적이라고해서 무작정 해하지도 않으며 전쟁의 피해자인 주민들에게도 친절하구요.

 

게다가 그는 항상 옳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심지어 그의 분대원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 입니다.

 

물론 미국에서 만든 드라마 이니까 당연히 미국은 선이고 독일은 악으로 표현되고, 매번 전투마다 독일군은 피해가 막심해도 미군은 경미한 피해만 입는 뻔한 스토리 였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결정적으로 도와주었고 식량을 포함한 많은 물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으므로 미국에 호감을 갖는 것이 당연한 국민의 도리인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미제는 x 도 좋다는 말이 있을 때 였습니다. 특별히 그렇게 배운적도 없는데....

당시엔 의정부나 동두천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의 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미군을 마주칠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멋지고 무엇이든 풍부하며 여유있어 보이는 것이 키도 작고 가난한 우리와는 급이 다른 사람으로 여겨졌을 정도 엿습니다.

게다가 '전투' 같은 드라마나 영화는 '미국사람=좋은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좋은사람은 당연히 우리편이어야 하니 '미국사람=우리편' 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도록 은연중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구요.

30년이 훨씬 지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서 손더스 중사와 흡사한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톰 행크스가 연기한 존 밀러 대위 말입니다.

 

두 캐릭터는 많이 닮았는데 심지어 사용하는 무기도 톰슨 기관단총으로 같았습닏다.

 

두 캐릭터가 주는 이미지는 전쟁속의 '좋은 사람' 이고 관객들은 그 '좋은 사람'이 우리편 이라는 데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나 봅니다.

'좋은사람'도 우리를 같은편으로 생각하는지, 반대편에는 '좋은사람'이 없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여유는 우리에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2년 정도 명호네 신세를 지고나니 드디어 우리집에도 티비가 생겼습니다.

 

당시 최신유행인 미제 제니스 14인치 였지요.

비슷한 시기에 전화도 놓았는데 전화는 신청후 2~3년을 기다린 후에 차례가 돌아온 것이라 집안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기념촬영까지 하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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