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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즐거움

아동 : 삼선교

by 감성노트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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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나 다리가 하나씩 있지요.

그리고 동네의 아이들은 대개 그 다리 밑에서 줏어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나에게는 우리동네에서 가장 큰 다리인 삼선교가 바로 그 다리 였습니다.

삼선교는 북악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성북천에 만들어진 다리들 중 하나인데, 혜화동에서 돈암동을 거쳐 미아리 고개로 이어지는 전차길 대로를 가로지르기에 그 곳에 대로를 연결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큰 다리 였습니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이 나의 기억속의 삼선교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나에게는 큰 충격 이었지요. 형들은 놀리느라 내게 그렇게 말했겠지만 부모님도 부정하지 않고 웃고만 계셧기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략 네 살이나 다섯 살 정도였을 때의 일이니 형들은 이미 고등학생 이었으므로 나에게는 형들도 어른으로 보였고 어른의 말은 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형들과 누나들은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다며 오직 나만 삼선교 아래에서 주어 왔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도 생각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가족이 아닌가?' '이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있을까?'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걱정이 마구마구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삼선교는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따라 갔을 때 몇 번 지나쳤던 곳인데 그저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을 뿐 주의 깊게 들여다 본 적은 없었기에 그 말을 들은 후엔 거기가 어떤 데 인지 궁금하여 참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혼자 가서 살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나의 기억과 유사한 다리 밑

 

우리 집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을 곰곰이 머리 속에서 그려보았습니다.

 

시장은 삼선교 전차길을 건너서 있었는데 혹시 시장에서 엄마 손이라도 놓치면 집잃은 아이가 될까봐 내심 오가는 길을 주의 깊게 보아둔 터여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골목을 나와 언덕 길을 내려가서 파출소 쪽으로 틀어서 가면 찻길이 나오고 그 옆의 개천을 따라 가다 보면..... 

여러번 반복하여 확실하게 되짚어 본 후 용기 내어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을 나섰습니다.

 

네 살먹은 아이가 혼자 가기엔 좀 부담스러운 거리였으나 그 때부터 나름 길 찾기에 재능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삼선교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거리를 좀 두고 다리 밑을 바라보니 과연 한 무리의 거지들이 얼기설기 판자를 대고 다리를 지붕삼아 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린 거지와 어른 거지가 섞이어 있는 것을 보면 가족끼리 사는 것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왕초 밑에 딸린 새끼 거지들 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가끔 우리 집 대문을 두들기던 거지도 거기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엔 동네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보통은 아침 식사가 끝나는 시간쯤에 집집마다 대문을 두들기며 남은 밤과 반찬을 동냥하였습니다.

 

대문을 두들기며 특유의 음정과 곡조로 "밥좀줘~~~ 에~~~"라고 외치면서.... 손에는 깡통을 하나씩 들고 있는데 밥이며 반찬을 한 깡통에 모두 부어 달라고 합니다. 그들도 나름 시스템이 있어서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평일보다 한 두시간 늦게 순회를 시작 하곤 하였습니다.

 

다리 밑을 관찰하니 내또래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도 있었는데 '저 아이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서 아직 저기에 남아 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우리집의 선택을 받은 나는 무척 운이 좋은 것이구나' 라고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쫒겨나지 않으려면 식구들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애 첫 상황 판단을 하게 되고 이로서 '인간세상에서 살아남기'라는 사회생활에 첫 발을 들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말에 대한 믿음은 싼타할아버지는 실제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국민학교 1~2학년 때 까지 지속 되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것이 나를 놀리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는 것을 눈치 채기는 하였지만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은 여전히 내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첫 질문이 '내가 어디서 왔을까?' 일텐데 성교육 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조차 민망하여 금기시 되던 때였기에 어른들도 그 원초적인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난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그 '국민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쯤 되서야 친구 혹은 책을 통해 셀프로 얻게 되는게 일반적 이었던 같습니다.

다리 밑에 거지가 살던 시절의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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