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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즐거움

우리 식구

by 감성노트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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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구 I

나에겐 형이 셋 있습니다.  셋이나 있었지만 형들은 나와 같이 놀지 않았습니다.

 

각각 십오년, 십삼년 그리고 십일년의 나이 차이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네다섯살 경으로 생각되는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에도 이미 큰 형은 대학생이었고 작은 형들은 고등학생 이었으니까요. 

누나는 둘인데 오년과 삼년 터울이라서 상대가 되기는 하였으나 같이 어울리기 보다는 다툴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작은 누나는 자기가 오빠들이나 막내에 비하여 차별을 받는다고 자주 불평을 하였는데 효과는 커녕 오히려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어머니에게 혼나기가 일수였습니다. 그 막내가 저 였습니다.

 

셋째 형과 큰 누나 사이에 누나가 한 명 더 있었다는데 625 때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명을 달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집안에서 유일하게 서울살이를 하던 우리집에 시골에서 유학온 막내삼촌과 사촌형이 같이 살았던 기간이 있었고 잠시 몇 해동안 식모 누나가 같이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1921년생인 아버지는 경기도 화성에서 5남1녀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합니다.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골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후에는 경기도청에서 근무게 되셔서 우리집이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967년 수원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기도청이 서울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누나와 저의 고향은 서울이 되었지요.

 

경기도청이 있던 곳

 

아버지보다 한 살이 적은 어머니는 근방인 경기도 평택에서 시집오셨는데 정적이며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신 아버지와는 달리 무척 활동적이며 생활력이 강하셨고 마음먹은 것은 꼭 이루고야 마는 추진력도 대단한 분 이셨습니다.

 

공무원의 박봉으로 육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킨 공의 구십프로는 어머니에게 돌려도 아버지가 섭섭해 하지 않으시며 동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보는 큰 형은 장남 역할에 대한 부담을 평생 불평없이 지고 가는 사람, 둘째 형은 세상의 오만 고민을 머리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던 사람 그리고 셋째 형은 주변이 어떻더라도 내 할일을 하련다 하는 사람 입니다.

 

큰 누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순진한 사람, 작은 누나는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고 애를 쓰며 버둥대던 사람....

 

1968년 가족사진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막내인 제가 가장 아버지를 닮았다고 합니다.

 

특히 중학교에 갈 때 머리를 빡빡깎으니 일제시대에 머리를 밀었던 아버지의 젊었을 때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며 나 자신도 체질과 성격까지 점점 아버지와 닮아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식구 II

대학 졸업후 첫직장이 있던 부산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장인어른은 충북 영동 출신으로 인천에서 625 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정착하셨다는데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성실함과 정직함 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런 분 이셨습니다.

 

처가는 크지 않은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큰처남이 물려받아 관리를 하였습니다. 

인천에서 장인어른을 만나 결혼하신 장모님은 내향적이며 순종적인 성격을 가지셨고 공장직원들과 친척들을 유난히 챙기는 장인 어른 덕분에 집안 일에 묻혀서 세월을 보내신 그런 분이셨지요.

 

아내는 2남3녀중 막내였는데 비슷하게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같은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이어서 나와 함께 꾸려온 우리집도 자연스레 평범한 보통 가정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가족사진


우리에겐 아들이 둘 있습니다. 

 

다섯 살 터울인데 어린시절 다툼의 앙금 때문인지 아직도 둘 사이에 서먹함이 덜 가신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것이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 큰 아이가 받은 상실감을 우리가 잘 보살피지 못한 때문이라며 지금도 마음 아파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제 앞가림을 할 정도로 다 커서 큰 아이는 이미 자기 가정을 꾸렸고, 작은 아이도 조만간 자기식구를 건사하게 될 것 입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했던것 처럼....

그리고 나와 나의 아내는 우리의 부모님들 처럼 그렇게 남아 있는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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