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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다시 읽은 명작 - 광장(1960)- 최인훈

by 감성노트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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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나의 '인생 책' 두 권 중 한 권인 '광장'을 만난 것은 데미안을 읽은 때와 거의 같은 시절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아마도 대학 2학년 가을에 접어들며 시작된 왜사는가?에 대한 고민인 점차 심해지던 3학년 초 무렵이었을 것 입니다.

그로부터 4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언제 한 번 다시 읽어보리라'하는 마음을 늘상 지니고 있었지만 생활인으로 사는 일상이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핑게로 이제서야 이 책을 통해 그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봅니다.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포로를 실은 인도배 타고르호에 타고 있는 이명준에게서 시작됩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은 철학과 3학년 학생인 명준이 한 때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던 은행지점장 댁에 얹혀살며 의미엔 관심 없고 재미만을 추구하는 그 집 딸 영미의 부르주아적 생활을 불편해 하던중 영미에게 소개받아 윤애를 만나게 됩니다. 

영미의 친구이긴 하지만 비슷한듯 다른 윤애와 교제를 이어가며 명준은 방학을 인천의 집에서 보내고 있는 윤애를 찾아가 머무르기도 할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형사가 찾아와 해방후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온다며 명준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습니다. 일제때 특고형사였다던 자신의 경력을 후임 경찰들에게 자랑삼아 떠들며 강압적인 조사와 폭력으로 명준을 빨갱이로 몰아갑니다.

경찰서를 나서는 명준의 독백이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내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

몇 번을 불려가 취조를 당하던 명준은 인천의 목로술집에서 우연히 북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정보를 알게되며 윤애를 두고 새로운 광장을 찾아서 월북합니다.

하지만 보람있는 청춘을 불태우며 정말로 삶다운 삶을 살아보려 하였으나 그 곳이 혁명이 아닌 혁명의 흉내만 낸 잿빛 공화국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노동신문 편집부에 근무하며 우연한 기회에 국립극장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은혜의 모스크바 공연 중 전쟁이 터져 명준이 참전하게되며 헤어지게 됩니다.

정치보위부원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사단사령부와의 연락을 담당하던 명준은 간호병으로 입대한 은혜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동굴에서 사랑을 나누었으나 임신중이었던 은혜는 폭격으로 사망하고 명준은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며 포로를 송환하는 과정에 택할 수 있던 세 길 중에서 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여서 인도의 캘커타로 향하는 3천톤의 타고르호를 타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되는 명준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던 선장은 인도에 도착하면 우리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자며 조카딸을 소개해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명준에겐 딸을 낳겠다던 은혜와 그녀가 낳은 딸이 큰 새와 꼬마 새가 되어 그를 따라오며 노니는 새로운 푸른 빛의 광장이 보이고....

중간 기항지인 홍콩의 불빛을 뒤로하고 다시 남중국해 항해를 시작한 타고르호의 선장은 석방자 한 사람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스터 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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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1936년생인 작가가 1960년에 발표한 소설이니 스물다섯에 쓴 책이라는 것에 새삼스레 놀라게 됩니다.

주인공 명준의 나이는 작가보다는 10년쯤 연상이 되는 세대로 해방후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기 전에 월북하고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치른 1920년대 후반 생 일 것으로 가늠이 됩니다.

아마도 소년시절의 작가가 주변에서 바라본 형이나 삼촌뻘 되는 청년들이 혼란했던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작품에 담아내었을 것 이라고 추정해 봅니다.

주인공은 이념의 허망함과 광장에 나선 개인의 나약함에 좌절하여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지대를 선택하였겠지만, 향하여 가고 있는 그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마져도 접어야 했던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일 명준이 캘커타에 도착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독자에게 전해지는 카타르시스는 훨씬 감소되었으리라는 것이 틀림 없으므로 향후 명준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질문을 깔끔하게 막아서는 엔딩 처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데 동의 합니다.

 


 

읽은 책속의 최인훈 캐리컬쳐

 

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 합니다.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저마다의 골목길이 있으며 어떤 경로로 이르렀는지는 문제될 것이 없으며

이 작품은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고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60년에 대하여는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에 만족치 않고 현상을 찾아가 광장에서 운명을 마주한 우리의 친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를 사는 것이 비로서 허락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보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표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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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1979년,

작품속의 명준과 같은 나이인 대학 3학년 때 이 소설을 읽고 왜 빠져들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마음은 열혈청년이지만 행동할 용기는 없는 소심한 젊은이에겐 아마도 격동의 시기를 고민하며 좌절하며 또 헤치며 살다가 장렬히 세상을 버려버리는 명준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일 것 입니다.

소설속의 명준은 이데올로기와 현실 속에서 고민하였지만 그 나이의 저에겐 사는 것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치기어린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해결할 수 없는 대상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은 상처를 입고 말 것이라는 동료의식의 애잔함도 보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2025년,

더이상 젊지 않은 심장은 쉬이 흥분하지 않아서 평온한 감정으로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25세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한 편으로는 살아오면서 밀실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았던게 아닌지 되돌아 보면서, 아직까지도 광장에 제대로 나서본 적이 없음을 부끄러워 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책 읽는 이 시간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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