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쯤 이었습니다.
필독도서 리스트에 있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것은. 그런데 그저 읽었을 뿐 제목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겨울방학 이었을 것인데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무어 읽을게 없을까하고 책꽂이 탐색을 하다가 눈에 띈 그 책을 별 생각없이 다시 뒤적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책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별생각 없이 책을 펼쳤지만 도저히 읽는 것을 중단할 수 없었지요. 아마도 그당시 내가 가진 삶에 대한 질문과 비슷한 이야기가 책속에서 펼쳐지고 있어서 혹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 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데미안은 나의 '인생 책' 두 권 중의 한 권 이러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0여년간 다른 이들과 감명받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들먹였으니 말입니다.
다른 한 권은 조만간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을테니까 그 때 까지 궁금증의 대상으로 묻어 두렵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한 가지는 그렇게 열심히 다시 읽었던 '인생 책'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60대의 지금 뿐 아니라 10년전에도 20년 전에도 마찬가지 였던 것 같습니다. 고작 생각나는 것은 싱클레어, 데미안 그리고 아프락삭스 이 세 단어와 알을 깨고 나오려 애쓰는 새의 모습 정도 이니까요.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젊은 나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스무살 시절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던가? 유난히 생각이 많던 나는 '왜 사는가?'라는 원천적인 고민 속에서 매일을 보내고 있던 또 한 명의 싱클레어 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책 속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동료의식을 느꼈던 것이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아 내었습니다. 청소년 우수 권장도서인 2004년판 데미안을. 년도로 보아 큰아이가 중학생때 읽었던 책인 모양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 책에서 어떤 감명을 받았을까? 궁금해 지더군요.
단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몇 군데만 확인하려고 책장을 열었지만 결국 모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이틀이 걸렸는데 여전히 매력적인 책 이었으며 일단 읽기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는 책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읽는 동안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인 베아트리체와 에바부인을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황하던 싱클레어가 자신의 길로 돌아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여인 이었는데 말입니다.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 잃은 남자에겐 여인의 도움이 절대적인 모양입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만 단지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 싱클레어를 탕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베아트리체와 그에게 새로운 삶에 의미를 부여한 운명의 여인이자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이 준 영향은 그야말로 절대적 이었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시 나의 스무살 시절로 돌아가자면,
나는 유난히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에 비하면 말입니다. 그중에 제일 큰 고민은 '왜 사는가?' 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하지 않는 고민 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남들은 하지 않는 고민을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 또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책속의 싱클레어는 나처럼 외로운 고민을 해가며 알 속에서 꿈틀대고 알껍질을 두드리며 마침내는 알껍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드디어 날개를 펼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성장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나역시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싱클레어의 내적 성장에 가이드 역할을 하였던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 같은 인물이 나에게도 나타날까? 베아트리체와 에바부인은? 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새로운 세상이 그저 내게로 걸어왔습니다.
대학 3학년을 마칠 때까지 나름 치열하게 생각을 다듬고 사고의 깊이를 늘이려 노력 하였으나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던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입대키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논산행 입영열차를 타던 날, 그 날부터 눈앞의 현실에 대처하기에 바빴던 군생활 27개월은 내게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의 고민을 없애 준 것이 그 것 입니다.
전역 후 학교로 돌아왔을 때 예의 그 미결의 고민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왜 사는가?' 라는 화두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런 고민을 했었다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어느새 그동안 멀리했던 공부가 하고픈 건전한(?) 생활인인 되어 있었으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것과 진배없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한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군대를 갔다와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나봅니다.
그렇게도 허무하게, 20대초반의 치열했던 시절 나의 친구였던 싱클레어와 변변한 작별 인사의 기회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굿바이, 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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